글로벌 결제 시장이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 속에서 삼성전자가 새로운 전략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발행자가 아닌 확산자로서 자사 스마트폰과 결제 플랫폼을 기반으로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의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이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투자 전문 자회사 삼성넥스트는 최근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인프라 기업 레인(Rain)의 시리즈B 투자 라운드에 참여했다.
이번 라운드에는 사파이어벤처스, 드래곤플라이, 갤럭시벤처스, 라이트스피드 등이 함께 참여해 총 5800만 달러(약 804억 원)를 조달했다. 레인은 비자 네트워크와 연계해 전 세계 가맹점에서 스테이블코인 결제가 가능한 카드를 발급하고, 기업·핀테크 업체를 위한 API를 제공하는 인프라 기업이다.
삼성전자는 결제 생태계 확장을 위해 해외 시장에서 이미 실험을 진행 중이다. 미국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코인베이스와 협력해 북미 지역에서 삼성페이 기반 가상자산 결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용자는 삼성페이를 통해 코인베이스 앱에서 가상자산을 구매하거나 입금할 수 있다. 이는 애플이 애플페이에 USDC 적용을 검토하고, 구글이 페이팔 발행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PYUSD)을 일부 결제에 활용하는 흐름과 같은 궤도다. 글로벌 제조·플랫폼 기업들이 결제 혁신을 앞세워 차세대 금융 인프라 경쟁에 뛰어드는 형국이다.삼성전자 스마트폰은 스테이블코인 확산의 핵심 경로로 꼽힌다. 삼성은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약 2억 대 이상을 출하하며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하드웨어 보안 모듈(HSM), 지문·홍채 등 생체 인증 기술, 글로벌 결제 경험을 갖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스테이블코인을 일상 속 결제 수단으로 정착시키는 최적 조건이다.

스테이블코인 확산의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히는 것은 사용자가 별도 전자지갑을 설치해야 하는 ‘지갑 장벽’이다. 삼성전자는 수년간 삼성페이를 통해 오프라인 NFC 결제망을 포함한 글로벌 결제 경험을 제공해왔다. 여기에 스테이블코인을 통합하면 기존 카드나 계좌처럼 자연스럽게 결제가 가능하다. 사용자 저항을 최소화하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 스마트폰의 가치가 커질 수 있다. 특히 삼성 스마트폰과 삼성페이가 가진 보안성과 사용자 기반은 확산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백엔드 인프라 측면에서는 삼성SDS가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삼성SDS는 2017년부터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넥스레저(Nexledger)’를 통해 스마트 계약, 물류 추적 등 다양한 실증 사업을 수행해왔다. 향후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사용자 단말기를 담당하고, 삼성SDS가 백엔드 시스템을 제공하는 구조가 정착된다면 완성형 스테이블코인 인프라를 구현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국내에서는 가상자산을 지급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는 등 제도적 기반이 부족하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규제 모형을 고도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하는 이유는 발행자가 아닌 전달 플랫폼으로서의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며 “스마트폰 보급력, 보안 기술, 글로벌 결제 경험을 모두 갖춘 삼성은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있어 가장 강력한 채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