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쓰나미, 전세계 인프라 장악
“국내 제도화 지연, 기업∙투자자 해외 시장 이동 가능성↑”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보다 준비자산∙검증 구조 논의 우선”
인공지능(AI)의 급속한 확산과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이 맞물리면서 글로벌 금융 질서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AI 에이전트 간 자동 결제가 현실화할수록 스테이블코인이 새로운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커진다. 이런 상황에 한국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비롯한 법∙제도 정비와 관련 기업의 성장 및 인재 육성 등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의원은 30일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블록체인 위크(KBW) 2026에서 ‘한국의 디지털자산 정책의 순간’(Korea’s Digital Asset Policy Moment)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기술의 보급 속도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전화기가 이용자 100만 명에 도달하기까지 75년이 걸렸지만, 페이스북은 10개월, 챗GPT는 불과 5일이 걸렸다. 단지 기술이 빠르다는 게 아니라 기술의 보급 속도가 달라졌다는 의미다. 새로운 기술이 수억 명의 일상을 바꾸는 데 걸리는 시간이 몇 세대에서 몇 년으로, 다시 며칠로 줄어든 셈이다.
이 같은 변화가 가장 빠르고 크게 나타나는 분야 중 하나가 ‘금융’이다. 특히 AI 기반 결제 인프라 자동화와 함께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민병덕 의원은 “기축통화인 달러가 디지털 달러가 되면서 전 세계 인프라를 장악하고 있다”며 이를 ‘달러 쓰나미’라고 표현했다.
민 의원은 전통 금융회사의 디지털자산 시장 진출에 주목했다. JP모건과 블랙록, 도이체방크, 비자, 스트라이프 등이 가상자산 서비스를 속속 내놓으면서 이제는 더 이상 투기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짐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AI와 스테이블코인의 결합 가능성을 예측했다. AI 에이전트가 정보를 검색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지불하거나 다른 에이전트와 자동으로 거래하는 환경에서는 기존 현금이나 카드와 다른 결제 수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민 의원은 “AI가 계약하고 결제를 판단하고 국경을 넘어 실시간으로 송금하게 될 것”이라며 “이땐 은행 영업시간도, 환전 수수료도 필요 없기 때문에 새로운 글로벌 결제 인프라 모델이 스테이블코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물자산(RWA) 토큰화 역시 이러한 흐름을 가속하는 요소로 꼽았다. 부동산과 채권, 주식, 원자재 등이 디지털 토큰으로 스마트컨트랙트 기반 거래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흐름에도 민 의원은 국내 제도 마련이 늦어질 경우 기업과 투자자가 해외 시장으로의 이동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준비해야 할 과제로 ▲제도 ▲기업 ▲인재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또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민 의원이 지난해 6월 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민 의원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지금, 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장벽 세우기가 아닌 그 위에 올라타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원화 스테이브블코인 생태계를)달러 쓰나미와 비슷한 세계로 갖춰야 하고, 그것보다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편리하면서도 유용하게 하는 게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민 의원은 현재 국내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발행 주체와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제한 문제에만 지나치게 집중돼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주요 쟁점은 은행에 발행 주도권을 부여할지, 가상자산거래소에 대한 지분을 제한할지 등을 정하는 것”이라며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은 은행이 담보하는 게 아니라 그 구조 자체에 있는 만큼, 일대일(1:1) 준비자산과 상환구조, 그리고 이를 어떻게 보존∙검증할지 등을 통해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업이 한국에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해야 한다”며 “개발 능력을 갖추면서 금융을 이해하고, 동시에 AI 기술을 다룰 수 있는 융합형 인재와 이를 육성할 교육 환경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민 위원은 앞으로 추진 과제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 마련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기관투자자의 디지털자산 시장 참여를 제시하며 “이 세 가지를 반드시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AI 세상이 5일만에 바꼈지만, 어쩌면 이보다 훨씬 더 빠를지도 모른다”며 “한국의 선택은 바로 지금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