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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원화의 재설계 ②] 원화 스테이블코인 vs 예금토큰, 한은이 주목한 ‘은행 모델’은

입력 2026-07-2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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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예금토큰·스테이블코인 공존 가능”…은행 예금 기반 지급수단으로 금융안정에 방점
정치권 “원화 스테이블코인 서둘러야”…해외송금·해외거래 초기 수요 주목
발행 주체·준비자산·상환권이 핵심 쟁점…디지털 원화 인프라 역할 분담 과제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예금토큰은 모두 원화 기반 디지털 지급수단이지만, 발행 구조와 활용 영역에서 차이를 보인다. (챗GPT)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예금토큰은 모두 원화 기반 디지털 지급수단이지만, 발행 구조와 활용 영역에서 차이를 보인다. (챗GPT)

원화 기반 디지털 지급수단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서둘러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한국은행이 프로젝트 한강을 통해 실증한 예금토큰 모델이 기존 통화질서와 금융안정을 유지하면서 디지털 지급수단을 확장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다.

두 모델은 모두 원화 가치를 디지털 환경에서 이전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제도적 성격은 다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사가 원화 예금, 국채 등 준비자산을 바탕으로 토큰을 발행하고 이용자는 이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이전하는 구조다. 반면 예금토큰은 은행 예금을 기반으로 은행이 고객에게 발행하는 디지털 지급수단이다. 발행 기반이 ‘민간 발행사의 준비자산’인지, ‘은행 예금’인지가 가장 큰 차이다.

한국은행이 프로젝트 한강에서 실험한 방식은 후자에 가깝다. 한은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과 함께 미래 디지털화폐 인프라 설계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실제 환경에서 검증하는 디지털화폐 활용성 테스트를 추진해왔다. 이 테스트에는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받은 은행들이 참여해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 예금토큰을 발행·유통하는 방식이 포함됐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금융주권 과제로 부상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제도 과제 중 하나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와 온체인 금융의 핵심 결제수단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역시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과 지급결제 인프라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금융주권 차원의 과제로 보고 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열린 ‘미국의 디지털자산 패권 전략과 한국의 대응’ 세미나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서둘러 논의해야 한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있어야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한국 시장을 곧바로 잠식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민 의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달러 기반 디지털 질서와 연결하면서도 국내 결제와 정산, 데이터와 산업 기반을 원화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5일 서울 중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열린 ‘미국의 디지털자산 패권 전략과 한국의 대응’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손기현 기자)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5일 서울 중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열린 ‘미국의 디지털자산 패권 전략과 한국의 대응’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손기현 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 안에서 허용될 경우 활용처는 국내 거래소 간 결제, 토큰증권·실물연계자산(RWA) 거래, 온체인 송금, 해외송금 등으로 넓어질 수 있다. 디지털자산 인프라 업계에서는 초기 수요가 국내 결제보다 해외송금과 해외거래에서 먼저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조진석 KODA 대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될 경우 가장 먼저 활용될 영역은 해외송금”이라며 “국내 외국인 노동자의 본국 송금 수요와 수수료 부담, 해외 현지에서의 외화 수취 불편 등을 고려하면 활용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 중고차 매매상들의 원화 결제 수요, K컬처 관련 굿즈·기념품 소액결제 등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쓰일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쟁점도 분명하다. 가장 큰 문제는 발행 주체다. 은행이 발행할 것인지, 비은행 사업자도 허용할 것인지, 컨소시엄 형태가 될 것인지에 따라 감독 체계와 금융안정 리스크가 달라진다. 준비자산을 어떤 방식으로 보관하고, 이용자의 상환 청구권을 어떻게 보장할지도 핵심이다.

세미나 자료집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 설계에서 발행자 범위와 준비금 구조를 핵심 쟁점으로 짚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를 예금은행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은행 자회사, 연방 적격 발행자, 주 적격 발행자 등 여러 인가 경로를 열어두고 있다. 핵심은 은행 여부 자체보다 1대1 준비금, 상환권, 감독·검사, 자금세탁방지 및 제재 준수 체계를 충족하는지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는 단순히 ‘원화 기반 코인을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발행자를 은행으로 한정할지, 비은행·기술기업까지 열어둘지, 준비금은 어떤 자산으로 구성할지, 대규모 환매 시 누가 유동성 공백을 메울지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예금토큰은 ‘은행 예금의 디지털 형태’

반면 한국은행이 프로젝트 한강에서 실증한 예금토큰은 은행 예금을 기반으로 한 지급수단이라는 점에서 접근법이 다르다. 스테이블코인이 별도 발행자와 준비자산을 전제로 한다면, 예금토큰은 기존 은행 예금과 중앙은행 결제 인프라를 디지털화하는 방식에 가깝다.

예금토큰은 민간 발행사가 별도 준비자산을 바탕으로 토큰을 발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은행 예금을 디지털화된 지급수단으로 전환하는 구조다. 이용자가 은행 앱에서 자신의 예금을 예금토큰으로 바꾸고, 이를 결제나 송금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의 장점은 기존 은행 시스템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예금토큰은 은행 예금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예금자보호, 지급준비, 은행 감독 등 기존 금융 규율 안에서 설계될 수 있다.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민간 디지털화폐의 혁신성을 수용하면서도 통화질서와 금융안정의 틀을 유지할 수 있다.

프로젝트 한강도 이 점에 방점을 찍고 있다. 프로젝트 한강은 중앙은행이 직접 모든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는 모델이 아니라, 중앙은행 화폐를 기반 인프라로 두고 은행 예금 기반의 예금토큰이 유통되는 구조를 실험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사에서 “프로젝트 한강 2단계 사업을 통해 CBDC와 예금토큰의 활용도를 높이겠다”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방향과 맞닿아 있다.

한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예금토큰을 단순 경쟁 관계로 보지는 않는다. 한은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디지털 시대의 화폐, 혁신과 신뢰의 조화 –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주요 이슈와 대응방안」 보고서와 관련한 이슈해설에서 이병목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은 “스테이블코인과 예금토큰은 서로 공존할 수 있고, 경쟁도 할 수 있다”며 “예금토큰과 스테이블코인이 같이 나가는 것이 조금 더 안정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병목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이 BOK 이슈해설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관련 쟁점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유튜브)
▲이병목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이 BOK 이슈해설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관련 쟁점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유튜브)

한국은행이 예금토큰 모델을 중시하는 이유는 통화제도의 안정성과 관련이 깊다. 중앙은행 화폐와 상업은행 예금이 함께 작동하는 기존 이원적 통화체계를 유지하면서도, 블록체인 기반 결제와 프로그래밍 가능한 지급 기능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시스템 밖에서 빠르게 확산될 경우 이용자 자금이 예금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할 수 있다. 반대로 예금토큰은 은행 예금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디지털 지급수단이 확산되더라도 기존 금융중개 기능을 크게 흔들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될 수 있다.

또 다른 차이는 결제 구조다.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사가 준비자산을 바탕으로 상환을 약속하는 구조에 가깝지만, 예금토큰은 은행 예금과 연결된다. 여기에 기관용 CBDC가 은행 간 결제 자산으로 놓이면 고객 간 지급과 은행 간 결제를 하나의 인프라 위에서 연결할 수 있다. 프로젝트 한강이 통합원장 논의와 맞닿는 이유다.

경쟁보다 역할 분담…관건은 제도 설계

결국 쟁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예금토큰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두 수단을 어떤 역할로 구분하고, 어떤 제도적 틀 안에서 연결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퍼블릭 블록체인과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활용성을 제공한다면, 예금토큰은 은행 예금과 중앙은행 결제 인프라를 바탕으로 제도권 지급결제 영역을 디지털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디지털자산 인프라 업계도 두 수단의 차이를 글로벌 유통성에서 찾는다. 조진석 KODA 대표는 예금토큰이 은행 예금과 중앙은행 결제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반 구조에서는 퍼블릭 블록체인처럼 해외에서 자유롭게 쓰이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퍼블릭체인으로 발행될 수 있어 전 세계 어디서나 유통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며 “이 같은 특성을 살려야 원화가 달러 기반 디지털 시장에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적으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 준비자산, 상환권, 감독체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중요하다. 예금토큰 역시 상용화 과정에서 은행 간 호환성, 이용자 보호, 개인정보 처리, 장애 발생 시 책임 소재 등을 풀어야 한다.

한국형 디지털 원화의 미래는 하나의 모델로만 정리되기 어렵다. 스테이블코인이 온체인 경제의 원화 유동성과 해외거래 수요를 담당한다면, 예금토큰은 중앙은행과 은행권이 연결된 제도권 디지털 지급 인프라를 담당할 수 있다. 디지털 원화 논의는 이제 ‘누가 코인을 발행하느냐’를 넘어, 원화 기반 디지털 금융질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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