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포·아베·오일러, 인프라와 운용 레이어 분리 방식으로 진화
온체인 신용 시장 경쟁 축, 유동성 확보에서 리스크 큐레이션 역량으로 이동

리먼 사태 교훈 되짚은 DeFi 대출 구조 변화
기관 투자자와 실물연계자산(RWA)이 온체인 대출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탈중앙화금융(DeFi) 대출 프로토콜의 구조가 단일 풀 중심에서 모듈형 리스크 관리 체계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타이거리서치는 16일 발간한 보고서 ‘DeFi 대출 시장은 왜 모듈화되고 있는가: 모포(Morpho), 오일러(Euler), 아베(Aave)의 리스크 관리 전쟁’에서 초기 DeFi 대출 시장이 모든 대출·담보·청산 메커니즘을 하나의 스마트컨트랙트 안에 압축하는 방식으로 성장했지만, 이 구조가 특정 자산의 부실을 전체 유동성 위기로 확산시킬 수 있는 한계를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전통 금융권이 리스크 관리 주체와 실행 인프라를 분리한 사례를 언급하며, DeFi 역시 비슷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 대형 머니마켓펀드(MMF)인 리저브 프라이머리 펀드는 보유 자산 중 리먼 브라더스 채권 비중이 1.2%에 불과했지만, 해당 자산의 부실이 펀드 전체 신뢰 훼손과 대규모 환매 요청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 이후 전통 금융은 자산 운용, 수탁, 담보 관리, 위험 감시 기능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리스크 전이를 차단하는 구조를 강화했다.
초기 DeFi는 전통 금융의 중개 레이어를 제거하고 이를 코드로 자동화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모든 자산이 하나의 통합형 풀 안에서 관리되는 구조에서는 특정 담보 자산의 가격 조작, 급격한 가치 하락, 청산 실패가 전체 프로토콜의 유동성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이에 따라 DAO 거버넌스는 위험 파라미터를 보수적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외에 변동성이 크거나 트랙레코드가 부족한 자산은 대출 시장 진입이 제한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DeFi 대출 시장이 자산별 리스크를 분리하는 모듈형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고 봤다. 특히 토큰화 국채, 사모 크레딧, 토큰화 주식 등 RWA가 온체인으로 들어오면서 이 같은 변화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RWA는 자산별 거래 가능 시간, 가격 피드 신뢰도, 규제 요건, KYC·AML 조건, 청산 절차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과거처럼 하나의 통합 파라미터로 관리하기 어렵다.
모포·아베·오일러, 리스크 격리 방식은 달라도 방향성은 동일
대표적인 사례로는 모포, 아베, 오일러가 제시됐다. 세 프로토콜은 출발점과 설계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기초 실행 인프라와 리스크 판단 레이어를 분리하고 자산별 맞춤형 위험 조건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모포, 큐레이터 중심으로 리스크 운용 외부화
모포는 모포 블루와 모포 볼트를 통해 인프라와 운용 레이어를 분리했다. 모포 블루는 담보 자산, 대출 자산, 담보인정비율, 가격 피드, 금리 모델 등 핵심 조건을 마켓 개설 시 고정하는 불변 프로토콜이다. 반면 모포 볼트는 독립 운용사인 큐레이터가 편입 가능한 마켓을 선별하고 공급 한도와 자본 배분을 조정하는 운용 레이어 역할을 한다.
이 구조에서는 프로토콜 자체가 모든 리스크를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스테이크하우스, 건틀릿, 센토라 등 DeFi 리스크 큐레이터들이 자산 선별과 익스포저 관리를 맡는다. 리스크 큐레이터는 대출 볼트에 편입할 자산을 고르고, 공급 한도와 담보 조건 등을 관리하는 주체를 뜻한다. 기관 투자자는 자신의 컴플라이언스 기준과 리스크 성향에 맞는 볼트를 선택할 수 있고, 프로토콜은 청산과 대출 실행 등 기초 인프라 역할에 집중한다. 보고서는 이를 전통 금융의 프라임 브로커리지 기능을 온체인 생태계 안에서 분업화한 사례로 해석했다.
아베 V4, 공유 유동성 유지하며 위험 전파 제한
아베는 V4에서 허브앤스포크(중앙 허브가 유동성을 관리하고, 개별 스포크가 자산별 시장을 담당하는 구조)를 도입하며 다른 방식의 모듈화를 추진하고 있다. 허브는 전체 유동성과 회계를 관리하고, 스포크는 자산별 대출 시장 역할을 맡는다. 각 스포크에는 독립적인 리스크 파라미터와 신용 한도가 부여되며, 특정 자산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당 스포크의 한도 조정이나 신규 차입 제한을 통해 위험 확산을 제한할 수 있다.
모포가 자산별 격리를 강하게 추구한다면, 아베 V4는 공유 유동성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리스크 전파 범위를 제한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에 가깝다. 이는 기존 대형 유동성 풀을 기반으로 새로운 RWA 시장을 빠르게 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보고서는 아베의 기관용 RWA 레이어인 호라이즌이 이러한 구조와 결합될 경우, 토큰화 국채, MMF, 기관용 펀드 등을 담보로 활용하는 온체인 대출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오일러 V2, 자산별 볼트와 크로스 담보 결합
오일러는 V2에서 EVK와 EVC를 기반으로 자산별 독립성과 크로스 담보의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구조를 택했다. EVK는 차입 기능이 추가된 신용 볼트를 만들 수 있는 키트이며, 각 볼트는 특정 자산과 리스크 설정을 독립적으로 가질 수 있다. EVC는 여러 볼트에 분산된 담보와 부채 관계를 하나의 계정 단위로 연결해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오일러의 구조는 자산별 맞춤형 대출 시장을 만들면서도 여러 담보를 연결해 자본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오일러는 온도파이낸스와 협력해 토큰화 주식인 SPYon, QQQon, TSLAon 등을 담보로 수용하는 대출 마켓을 출시했고, 토큰화 국채와 CLO(대출채권을 묶어 만든 구조화 금융상품)를 담보로 활용하는 RWA 볼트도 선보였다. 다만 여러 볼트가 연결되는 만큼 동일 자산, 오라클, 담보 구조에서 발생하는 간접적 리스크 전이 가능성은 과제로 남아 있다.
보고서는 세 프로토콜의 접근 방식이 서로 다르다고 평가했다. 모포는 마켓 생성과 리스크 운용을 외부화해 속도와 선택권을 극대화하고, 아베는 통제된 거버넌스 위임과 공유 유동성을 바탕으로 자본 효율성을 유지하는 방향을 택했다. 오일러는 자산별 독립성과 크로스 담보 구조를 결합해 유연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온체인 신용 시장 경쟁, 프로토콜에서 운용 레이어로 이동
다만 공통적인 방향성은 명확하다. DeFi 대출 시장의 경쟁 축이 단순한 유동성 확보나 금리 경쟁에서 담보 심사, 리스크 설계, 규제 대응, 운용 이력 구축 역량을 갖춘 운용 레이어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타이거리서치는 현재 온체인 큐레이션 볼트, 즉 큐레이터가 블록체인 위에서 담보 자산과 대출 시장을 선별해 운용하는 볼트의 총 운용자산이 약 74억 달러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전통 금융에서 프라임 브로커리지 인프라가 정비된 이후 헤지펀드 산업이 성장한 것처럼, DeFi 대출 시장도 인프라 경쟁 이후 운용 역량을 중심으로 한 경쟁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