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서방 중심 디지털 결제망 형성 가능성 거론
“주식시장 기술+NCC 통합 청산체계 활용∙∙∙새 기회 제공”
“달러∙스위프트 거치지 않는 디지털 결제망 형성∙∙∙금융망 경쟁 확대”
러시아가 가상자산을 제도권에 편입하는 가운데, 모스크바증권거래소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테더 거래를 예고했다. 이번 조치는 서방의 경제∙금융제재로 제한된 국제 자금 이동 경로를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제재 대상 거래소라는 한계로 실제 투자 수요 확보에는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장기적으로는 비서방 국가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디지털 결제망이 형성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 코인텔레그래프는 3일(현지시각) 모스크바증권거래소(모엑스, MOEX)가 12월 1일부터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테더(USDT) 거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모엑스는 이를 러시아 최초의 체계적인 디지털통화 시장으로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모엑스는 시장 참여자의 플랫폼 접속에 맞춰 시범 거래를 진행한다. 거래에는 기존 증권시장의 인프라를 활용하며, 청산은 국가청산센터(NCC)에서 이뤄진다. 운영 시간은 모스크바 현지시각 오전 6시 50분부터 오후 11시 50분까지다.
초기에는 당일∙익일 결제와 스왑 거래를 지원한다. 비적격 투자자는 가상자산 매수에 앞서 사전 평가를 통과해야 하며, 연간 매수 한도는 중개업체 한 곳당 30만 루블(약 3700달러)로 제한된다.
모엑스 측은 “기존 증권시장 참여자와 고객뿐만 아니라 투자∙결제 목적으로 디지털자산을 활용하는 주체도 거래에 관심을 보인다”며 “주식시장의 기술과 NCC의 통합 청산체계를 활용해 시장 참여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8월 ‘디지털 화폐 및 디지털 권리에 관한 법안’에 서명했다. 주요 조항은 9월 1일부터 시행됐으며, 비거주 디지털예탁기관에 관한 규정 등 일부 조항은 내년 7월부터 적용된다.
모엑스는 해당 법률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시장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하원 국가두마는 해당 법이 가상자산거래소, 중개인, 수탁기관 및 기타 가상자산 관련 제공업체를 포함한 시장 참여자의 규제 기준을 명시한다고 밝혔다. 운영자는 규제 요건을 충족하고 자율규제기구(SROs)에 가입해야 한다. 반면 적격투자자는 매수 금액에 제한이 없다. 다만 러시아 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가상자산 결제는 여전히 금지다.
지난 8월에는 중앙은행(BoR)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거래할 수 있는 자산으로 BTC, ETH, USDT 등을 허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당시 중앙은행 측은 “시가총액, 일일 평균 거래량, 해외 시장에서 5년 이상의 가격 이력 등을 고려해 거래 대상 선정 기준을 마련했다”며 “이 같은 기준은 비적격투자자를 가상자산 가격의 급격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변동성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격 구분 없이 거래 전 가상자산 투자 위험을 충분히 숙지할 것을 당부했다.
전문가는 러시아의 가상자산 제도화를 서방의 경제∙금융제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평가한다.
한국디지털에셋(KODA) 조진석 대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주요 은행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 SWIFT) 결제망에서 배제되면서 가상자산을 국제결제의 보완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공식 가상자산 거래를 정부 감독 아래 제도권으로 편입하려는 정책”이라며 “개인의 투기적 거래를 제한하면서 전문투자자와 기관 중심으로 시장을 육성하려는 의도”라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경영학과 채상미 교수는 “러시아의 정책 전환은 서방 제재 우회와 국가 유동성 확보를 위한 실용주의적 조치”라며 “비공식 거래를 중앙은행 관리체계에 편입해 자금 흐름을 감독하고 세원을 양성화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밝혔다.
한편 시장 활성화의 변수는 여전히 서방의 경제제재다.
모엑스와 NCC는 2024년 6월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영국도 같은 시기에 모엑스를 제재했으며, 유럽연합(EU)은 올해 7월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러시아 국경 간 결제 플랫폼 엑스베드(Exved) 세르게이 멘델레예프(Sergey Mendeleev)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코인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거래시장의 수요 확보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제재 대상 거래소에서 거래하려는 투자자가 많지 않다고 판단해 국내∙외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멘델레예프 CEO는 모엑스의 거래 환경을 스베르방크(Sberbank)의 귀금속 계좌에 비유했다. 해당 계좌는 실물 금속을 보유하지 않고 계좌 잔액으로 거래하는 방식이다. 그는 “투자자가 터무니없이 높은 스프레드(자산의 매수∙매도 가격 간 차이)에 직면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며 “일반 비적격투자자에게는 매력도 수익성도 없는 제안”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경 간 결제에서는 활용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멘델레예프 CEO는 수입∙수출업체가 가상자산을 직접 사고파는 시장이 마련된다면 대외무역에 도움이 된다고 봤다. 그러나 거래자가 0.05%에 불과한 가격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에서 중개기관이 추가되는 구조의 경쟁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러시아의 정책 전환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황석진 교수는 “당장 달러 패권을 흔들 정도의 영향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러시아가 중국 등 비서방 국가와의 무역결제에 가상자산을 활용한다면 달러와 스위프트를 거치지 않는 디지털 결제망이 형성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도 달러와 루블을 넘어 전통적인 국제금융망과 디지털자산 기반 금융망의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