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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원화의 재설계 ①] “8만 명 실거래” 프로젝트 한강, 금융 인프라로 확장

입력 2026-07-2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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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송 총재, 프로젝트 한강 2단계로 CBDC·예금토큰 활용도 제고
한은 “8만 명 이상 참여한 세계 최초 대규모 실거래”…2단계 확대 기반 확인
예금토큰 넘어 국고금·국채·아고라로 확장…디지털화폐 논의, 금융 인프라 설계로 이동

▲프로젝트 한강의 1·2단계 실증과 향후 확장 방향을 정리한 인포그래픽 (챗GPT)
▲프로젝트 한강의 1·2단계 실증과 향후 확장 방향을 정리한 인포그래픽 (챗GPT)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이후 디지털화폐 인프라를 한국은행의 핵심 과제로 끌어올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이지만, 한은이 최근 제시하는 구상은 단순한 ‘디지털 원화’ 발행을 넘어 예금토큰, 국고금 집행, 국채 토큰화, 국경 간 결제까지 포괄하는 차세대 화폐·금융 인프라에 가깝다.

신 총재는 취임사에서 “프로젝트 한강 2단계 사업을 통해 CBDC와 예금토큰의 활용도를 높이고, 아고라 프로젝트 등 국제협력을 통해 디지털 지급결제 환경에서도 원화의 위상을 높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원화 국제화와 통화제도 혁신이 금융안정을 저해하지 않도록 변화된 환경에 맞는 거시건전성 체계도 논의하겠다고 했다.

CBDC 넘어 통합원장으로…프로젝트 한강의 재정의

프로젝트 한강은 한국은행이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과 함께 추진한 디지털화폐 활용성 테스트다. 한은은 2023년 연구 범위를 확장해 미래 디지털화폐 인프라 설계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실제 환경에서 검증하는 프로젝트로 프로젝트 한강을 발표했다.

핵심은 범용 CBDC가 아니다. 한은은 누구나 현금처럼 사용하는 범용 디지털화폐 대신, 은행 등 금융기관만 이용할 수 있는 기관용 디지털화폐를 중심에 두고 은행들이 고객에게 발행하는 예금토큰 등 다양한 민간 디지털통화를 아우르는 디지털화폐 네트워크를 시범 구축했다.

한은은 프로젝트 한강 1단계의 의미를 ‘대규모 실거래 환경에서 블록체인 기반 금융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블록체인 자체는 기존에도 있었지만, 중앙은행과 금융기관들이 실제 블록체인 금융 시스템을 만들어 8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실거래를 진행한 것은 세계 최초”라며 “그 시스템이 원활하게 잘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실증 성과는 신 총재가 국제무대에서 프로젝트 한강을 소개하는 근거가 됐다. 신 총재는 1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중앙은행 포럼에서 ‘통합원장의 실제 구현: 프로젝트 한강의 교훈(A unified ledger in practice: lessons from Project Hangang)’ 논문을 발표하고, 프로젝트 한강을 통합원장 기반 금융 인프라의 실제 구현 사례로 제시했다.

해당 세션은 화폐, 지급결제, 금융거래가 디지털화되는 과정에서 토큰화가 가져올 기회와 과제를 다루는 자리였다. 논문은 프로젝트 한강을 중앙은행 화폐, 상업은행 예금, 토큰화 자산을 하나의 프로그래밍 가능한 원장 위에서 연결하는 시도로 설명했다. 기존 금융시스템의 핵심인 이원적 통화체계를 유지하되, 지급과 결제, 자산 이전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유럽은 청사진 단계…한국은 실거래 실증

프로젝트 한강은 유럽의 통합원장 구상과도 비교된다. ECB는 통합원장 기반 토큰화 도매금융 인프라 구상인 ‘아피아(Appia)’를 추진하고 있다. 반면 프로젝트 한강은 예금토큰을 실제 이용자와 가맹점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실증했다는 점에서 한 단계 앞선 사례로 평가된다.

다만 ‘유럽보다 앞섰다’는 평가는 기술 우위보다 실증 단계의 차이에 가깝다. 유럽이 통합원장 기반 도매금융 인프라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단계라면, 한국은 예금토큰을 일반 이용자와 가맹점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검증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프로젝트 한강 1단계 실거래 테스트는 지난해 3개월간 진행됐다. 한은 설명에 따르면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받은 7개 은행이 참여했으며, 최대 10만 명 규모로 설계된 테스트에 8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실제 사용처도 편의점,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 커피숍, 서점, 배달앱 등으로 구성됐다.

이용자는 은행 스마트폰 앱에서 자신의 예금을 예금토큰으로 전환하고, QR코드 방식으로 결제하거나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다. 한은은 이를 기존 모바일뱅킹이나 핀테크 페이서비스와 유사하게 설계해 누구나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프로젝트 한강에 참여한 은행은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IBK기업은행, NH농협은행, BNK부산은행 등 7곳이다. 은행권은 실증 과정에서 예금토큰의 결제 편의성, 전환·환급 절차, 가맹점 적용 가능성 등을 점검했다. 2단계에서는 기존 참여 은행에 iM뱅크와 BNK경남은행이 추가될 예정이다.

한은 관계자는 “1단계 실거래 테스트는 후속 2단계 사업들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됐다”며 “2단계에서는 실거래 규모와 사용처를 확대하고, 참가 은행도 두 곳 더 늘려 편의성과 상용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젝트 한강은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반으로 운영된다. 한은은 퍼블릭 블록체인이 아니라 중앙은행과 금융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선택했다. 은행들이 네트워크 노드로 참여하는 구조로, 보안과 통제 가능성을 확보하면서 예금토큰의 발행과 유통을 검증하는 방식이다.

프로젝트 한강의 의미는 기술 실험을 넘어선다. 디지털화폐 네트워크 위에서 예금토큰, 이머니 토큰, 특수지급토큰 등 다양한 민간 디지털통화가 유통될 수 있는 구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다. 이는 중앙은행이 직접 모든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는 모델이 아니라, 중앙은행 화폐를 기반 인프라로 두고 민간이 다양한 지급수단을 얹는 구조에 가깝다.

국고금·국채·국경 간 결제로 확장

신 총재의 구상은 프로젝트 한강 1단계에 머물지 않는다. 한은은 프로젝트 한강 2단계를 통해 CBDC와 예금토큰의 활용도를 높이고, 아고라 프로젝트 등 국제협력을 통해 디지털 지급결제 환경에서 원화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2단계의 핵심 중 하나는 국고금 집행 실증이다. 자금의 사용처와 기간, 자격 요건을 사전에 설정하고 조건을 충족할 때만 자금이 집행되는 구조를 검증하는 방식이다. 이는 보조금과 업무추진비 등 공공자금 집행을 사후 감사 중심에서 사전 검증 중심으로 바꾸는 실험으로 볼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2단계 사업은 1단계 실거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별도로 진행되고, 국고금 시범사업은 기획재정부와 함께 올해 먼저 추진한다”며 “전기차 충전 시설과 공무원 업무추진비를 중심으로 먼저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 재정 집행과의 연결 가능성도 주목된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 예산이 모두 국고금으로 나가는 만큼 국고금 규모가 현재 기준 약 700조 원 수준”이라며 “기획재정부는 2030년까지 이 중 4분의 1을 예금토큰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방향으로 다양한 사업을 발굴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확장 축은 국채 토큰화다. 국채가 통합원장 위에서 토큰화되면 담보 관리, 환매조건부채권(RP), 공개시장운영, 증권 결제 등 중앙은행과 금융기관의 핵심 업무가 스마트계약 기반으로 재설계될 수 있다.

국경 간 결제에서는 국제결제은행(BIS)이 추진하는 프로젝트 아고라와의 연계 가능성이 주목된다. 아고라는 토큰화된 중앙은행 준비금과 상업은행 예금을 활용해 국가 간 도매 결제의 비효율을 줄이려는 국제 실험이다.

결국 프로젝트 한강은 CBDC 발행 여부를 묻는 단순한 논의가 아니다. 중앙은행 화폐와 은행 예금, 토큰화 자산을 하나의 인프라 위에서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신 총재 체제의 한은이 디지털화폐 논의를 ‘화폐 발행’에서 ‘금융 인프라 설계’로 옮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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