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A 시행, EU 내 탄탄한 입지 확보 집중 방침
“말 그대로 說∙∙∙영향력 유지할 것”
세계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가 MiCA 시행에 따른 유럽 내 사업 축소에 이어 영국에서 대규모 소송에 걸리며 위기에 직면한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과거 사법리스크와 맞물린 결과로 보고 있지만, 바이낸스의 막대한 자본력과 위기대처 능력을 고려하면 단순히 ‘낭설’에 그친다는 평가도 있다.

최근 바이낸스가 대규모 소송에 걸렸다.
영국 로이터는 1일(현지시각) 바이낸스와 창펑자오 창업자 겸 전 CEO를 상대로 한 1억5000만 파운드(약 2억 달러)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런던 고등법원에 제기됐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원고는 1700여 명의 영국 투자자들이며, 피고는 영국령 케이맨제도에 등록된 바이낸스홀딩스와 아랍에미리트(UAE)에 등록된 네스트 익스체인지,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신원 미상인’이다. ‘신원 미상인’은 자오 전 CEO를 지칭한다고 알려졌다.
핵심 쟁점은 바이낸스의 영국 내 파생상품 판매 시점과 규제 적용 범위다. 앞서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지난 2021년 가상자산 기업이 개인투자자에게 파생상품 제공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바이낸스는 영국 투자자에게 추가 정보 입력을 요구하는 등 영국 내 시장 접근 제한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원고 측은 “바이낸스가 2019년 말부터 손익을 증폭시킬 수 있는 레버리지 상품 등을 무허가로 판매∙제공하고 금융서비스시장법(FSMA)을 위반해 홍보했다”며 이에 따라 수만 파운드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로이터는 바이낸스가 소송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지만, 진행 중인 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고 전했다.
사실 법정에 바이낸스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 법무부(DOJ)가 지난 2022년 당시 자오 CEO를 상대로 규제 조사에 들어가면서 사법리스크에 직면했다.
DOJ는 자오 CEO가 △자금세탁방지(AML) 의무 △은행비밀법(BSA) △이란 등 제재 대상 국가 거래와 관련한 경제제재 △무허가 송금업 운영 여부 등을 위반했는지 수사에 착수했다.
이듬해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여러 법인을 통해 불투명한 기업 구조를 구축한 점, 이를 통해 중앙화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을 운영한 점, 특히 자오 CEO가 이를 총괄한 점 등을 주장하며 상품거래법(CEA) 및 CFTC 규정 위반 혐의로 제소했다.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경우 별도의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해 11월 바이낸스의 법적 공방은 새 국면을 맞았다. 바이낸스는 AML 프로그램 미비, BSA 위반, 무허가 송금업 운영, 경제제재 위반 등을 인정하며 총 43억 달러 규모의 벌금형에, 자오 CEO는 BSA 위반을 인정하며 5000만 달러의 벌금형에 처했다. 결국 자오 CEO는 바이낸스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바이낸스는 독립감시인을 선임해 규제 준수 강화 및 개선 작업을 수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미국 연방법원은 자오 전 CEO에게 검찰 구형보다 낮은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이는 세계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창업자가 실형받은 상징적인 사례로 남았다.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자오 전 CEO를 사면하며 사법리스크는 어느 정도 해결된 듯 보였다. 문제는 유럽의 가상자산규제기본법(MiCA)이 본격 시행되면서 유럽 내 바이낸스의 입지가 또다시 흔들리는 모양새다. 앞서 유럽연합(EU)은 지난 2023 세계 최초로 MiCA를 제정했고 지난 7월 1일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MiCA 준수를 위해 2023년부터 독일, 네덜란드, 키프로스 등 3국에서 사업을 철수하며 규제 등록 문제를 해결했다. 이후 EU 중 탄탄한 입지를 확보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최근 그리스를 비롯해 스페인에서마저도 사업을 철수해야 할 상황이다. 스페인 국가증권시장위원회(CNMV)는 지난달 26일 EU의 획기적인 MiCA 체제 아래에서 라이선스를 확보하지 못한 가상자산 회사에 대해 연장이나 면제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참고로 바이낸스는 2022년 스페인에서 가상자산서비스제공자(VASP)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하지만 MiCA 시행으로 별도의 라이선스가 필요한데 바이낸스는 아직 이에 대한 라이선스를 확보하지 못했다.
지난달에는 그리스 자본시장위원회(HCMC)로부터 라이선스를 거부당하며 유럽 시장에서의 축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래도 바이낸스는 유럽 시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바이낸스 측은 “유럽은 바이낸스에 중요한 지역”이라며 “명확하면서도 공정한 MiCA 체제 아래에서 운영하고자 하는 바이낸스의 야망은 변함없다”고 유럽 시장에서의 잔류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면서 “EU 전역의 가상자산에 대한 일관된 규제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려는 MiCA의 목표를 계속해서 지지할 것”이라며 “앞으로 몇 달 안에 다른 EU 회원국의 라이선스를 확보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바이낸스의 위기설은 말 그대로 ‘설(說)’일 뿐 글로벌 시장 장악력은 여전하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단순한 유동성 문제가 아닌 규제 신뢰의 붕괴에서 비롯된 만큼, 사업 모델 자체가 규제 체계와 충돌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강조한다. 바이낸스는 거래소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는 데다 충분한 대응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디파이(DeFi)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게 가상자산업계의 시각이다.
한국디지털에셋 조진석 대표는 “바이낸스가 주요국의 규제를 맞추지 못해 제도권 금융이나 기관과의 협력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며 “바이낸스는 필요하다면 법을 준수하는지 감시하는 부문을 만들어 EU 내에서 사업을 확장하려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황석진 교수는 “(바이낸스의 위기설은)가산자상 시장이 명확한 구조 전환 국면에 서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시장의 위축보다는 규제 회피를 기반으로 한 성장 모델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바이낸스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시장 변동성을 확대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코인베이스, 크라켄 등 규제 친화적 사업자 중심의 재편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에는 가상자산 시장이 ‘탈중앙성’이나 ‘접근성’만으로 경쟁하는 단계가 아닌, 제도권 금융과 동일한 수준의 신뢰를 확보하는 경쟁으로 이동하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