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은 효율 아닌 회복탄력성 위한 네트워크…느려도 괜찮다”

입력 2026-01-0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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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보다 지속성, 편의보다 신뢰 제거… 이더리움이 택한 다른 길

“효율보다 자유”… 이더리움이 택한 회복탄력성의 철학
편의가 만든 중앙화의 그림자, 트러스트리스가 필요한 이유
선언을 넘어서다… 푸사카 업그레이드로 드러난 실제 선택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공동 창립자가 강조한 ‘회복탄력성 중심 설계’ 철학을 시각화한 이미지 (구글 노트북LM)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공동 창립자가 강조한 ‘회복탄력성 중심 설계’ 철학을 시각화한 이미지 (구글 노트북LM)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공동 창립자 비탈릭 부테린이 이더리움의 핵심 가치로 효율성과 편의성보다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트러스트리스(trustlessness)’를 재차 강조했다. 빠르고 편리한 사용자 경험을 지향하는 기존 기술 흐름과 거리를 두고, 정치·기술적 충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네트워크를 지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테린은 5일(현지시간) X(구 트위터)를 통해 “이더리움은 금융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거나 앱을 더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탄생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효율과 편의성은 이미 잘 작동하는 평균적 상황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이더리움이 풀고자 하는 문제는 시스템 붕괴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제시한 핵심 개념은 ‘회복탄력성’이다. 이는 수익률이나 지연시간 경쟁이 아니라, 정치적 비난이나 서비스 차단, 개발자 이탈, 클라우드 인프라 장애 등 극단적 상황에서도 네트워크가 계속 작동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부테린은 “Cloudflare가 중단되거나 인터넷 사이버전이 발생하더라도 네트워크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철학은 최근 공개된 ‘The Trustless Manifesto’에서도 구체화됐다. 해당 문서는 요아브 와이스, 비탈릭 부테린, 마리사 포스너가 공동 집필했으며, 시스템의 정확성과 공정성이 중개자에 대한 신뢰가 아닌 수학과 합의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트러스트리스 설계’를 핵심 원칙으로 제시했다.

매니페스토는 호스티드 노드(개인이 직접 노드를 운영하지 않고 Infura·Alchemy 등 외부 사업자가 제공하는 노드 인프라에 의존하는 방식), 화이트리스트 릴레이어(특정 운영자나 승인된 주체만 트랜잭션 중계·실행 권한을 갖는 구조), 관리형 API와 같은 편의적 선택이 누적될 경우, 프로토콜이 플랫폼으로 변질되고 결국 접근을 통제하는 ‘디지털 지주’가 등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기주권, 검증 가능성, 검열 저항성, 운영자 대체 가능성(Walkaway Test), 일반 사용자의 접근성 확보 등을 트러스트리스 시스템의 필수 조건으로 제시했다.

특히 최근 이더리움 생태계에서 기본값처럼 사용되는 호스티드 RPC(개인이 직접 노드를 운영하지 않고 Infura·Alchemy 등 외부 사업자가 제공하는 원격 노드 인터페이스를 통해 블록체인에 접속하는 방식), 중앙화된 시퀀서(롤업 등 확장 네트워크에서 단일 운영자가 트랜잭션 순서 결정과 블록 생성을 독점하는 구조), 업그레이드 키 유지, 중앙화 거래소에 위임된 자기보관 구조 등은 ‘편의성에 의한 탈중앙화 침식’의 사례로 지목됐다. 문서는 이러한 변화가 쿠데타처럼 급격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의존이 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진행된다고 분석했다.

부테린은 이에 대해 “이더리움은 세상의 모든 기술 흐름을 대표하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원칙을 고수하는 대신 비용과 불편함을 감수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더리움을 구글이 아닌 리눅스에 비유하며, 대기업과의 효율 경쟁에 뛰어드는 순간 ‘조금 더 탈중앙화된 중앙화 시스템’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장 정직한 슬로건은 트레이드오프(어떤 가치를 얻기 위해 다른 가치를 포기해야 하는 불가피한 선택)를 숨기지 않는 것”이라며, 이더리움이 느리고 복잡해질 수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효율성을 얻기 위해 신뢰를 전제하는 구조(특정 운영자·중개자·플랫폼이 올바르게 행동할 것이라는 가정을 시스템 설계에 포함하는 것)를 도입하는 것은 단기적 편의일 뿐, 장기적으로는 자유를 잠식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철학은 지난해 12월 완료된 이더리움의 푸사카(Pusaka) 업그레이드에서도 드러난다.

▲이더리움 푸사카 업그레이드(Fusaka Upgrade) 정보 (손기현 기자)
▲이더리움 푸사카 업그레이드(Fusaka Upgrade) 정보 (손기현 기자)

푸사카 업그레이드는 처리 속도나 사용자 경험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검증 가능성과 네트워크 운영의 지속 가능성을 우선 고려한 구조적 선택을 반영했다. 이는 노드 요구 사양이 과도하게 증가해 검증 참여가 소수 인프라 운영자에게 집중되는 상황을 경계하고, 특정 운영자나 서비스에 대한 의존을 완화하려는 문제의식에 기반한다. 단기적인 효율 경쟁보다 트러스트리스를 중시하겠다는 이더리움의 기조가 실제 업그레이드에 반영됐다는 평가다.

이 같은 선택은 매니페스토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매니페스토는 “트랜잭션을 처리할 수 있는 블록 공간 자체는 이미 충분히 존재하지만, 탈중앙성과 무허가성, 회복탄력성을 동시에 갖춘 블록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라며 이더리움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했다. 거래 처리량이나 사용자 경험보다 중요한 지표는 ‘트랜잭션당 얼마나 많은 신뢰를 제거했는가’라는 것이다.

부테린은 “이더리움은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공개적이고 복구 가능한 방식으로 실패하는 시스템”이라며 “세계는 더 효율적인 중개자가 아니라, 중개자를 덜 믿어도 되는 구조를 필요로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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