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논쟁에 체계조차 못세워
네이버 시총과 맞먹는 기업으로
규제 해소 법안, 투자에 영향
국내 5대 거래소 1분기 57조 거래
원화기반 도입 논의 속도 붙을 듯
"중앙銀 관여" 한은과 견해차 극복해야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 열풍을 타고 ‘네이버급’ 기업이 탄생했다. 상장 이틀 만에 시가총액 30조 원을 넘어선 서클이 그 주인공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규제 체계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공방만 이어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제도적 불확실성이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따르면 서클의 시가총액은 240억 달러(약 32조 원)에 달한다. 6일(현지시간) 상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 2거래일 만에 네이버 시가총액과 맞먹는 기업이 등장한 셈이다.
서클은 시가총액 기준 세계 2위 스테이블코인인 USDC의 발행사다. 기업공개(IPO) 전부터 초과 청약을 기록하며 기업가치 약 69억 달러(약 9조 원)를 인정받았다. 6일 상장한 서클은 첫날 168.48% 폭등한 데 이어 다음 거래일에도 29.40% 추가 상승했다. 6일 기준 종가는 107.70달러로, 공모가(31달러) 대비 약 247% 오른 수치다.
서클의 IPO 흥행은 글로벌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결과로 풀이된다. 디파이 데이터 분석 플랫폼 디파이라마에 따르면 9일 기준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2504억 달러(약 340조 원)로, 연초 2050억 달러(278조 원) 대비 약 500억 달러 증가했다. 이 중 서클이 발행한 USDC는 약 635억 달러가 유통 중으로,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약 25%를 차지한다.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는 법안인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가 미국 상원을 통과했다는 점도 투자 심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연방정부에 등록하면 광범위한 금융 활동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간 불확실했던 규제 지위를 해소하고, 발행사가 연방 차원의 인가를 통해 합법적으로 영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첫걸음조차 떼지 못한 상태다. 현재 국내에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나 규제 체계가 없다. 다만 최근 한국은행이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고팍스)에서 거래된 테더, USD코인, USD스카이 등 세 가지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거래금액은 총 57조 원 규모로 수요는 분명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대통령실 정책실장에 친가상자산 인물인 김용범 실장을 기용한 만큼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정책 공약집에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 등 활용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고, 김 실장은 대표로 재직하던 해시드오픈리서치에서 3월 ‘원화 스테이블코인 필요성과 법제화 제안’ 리포트를 발간했다.
다만 한국은행과의 견해차는 넘어야 할 산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화폐를 대체할 수 있는 성격이 있어 비은행 기관이 자의적으로 발행할 경우 통화정책의 효과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한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 단계에서부터 중앙은행이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돼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앞서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태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스테이블코인의 핵심은 ‘가치 안정화 메커니즘’”이라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담보를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테이블코인을 수익형 투자자산으로 볼지, 지급수단으로 볼지에 대한 방향성 역시 입법 과정에서 자세히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