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4일까지 휴회∙∙∙법안 통과 또 다시 지연
문제는 ‘윤리 조항’∙∙∙트럼프 등 가상자산 얻는 수익 제한
“공화당의 실제 입법 추진 의지 반영”

미국 상원 공화당이 클래리티법 처리를 위한 신청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달 휴회에 돌입하면서 법 통과가 다음달로 미뤄졌다. 다만, 법안이 통과되려면 공화당 의원만으로는 표결수가 부족해 실제로 법이 통과돼 본격적으로 시행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영국 로이터는 9일(현지시각) 미국 공화당 존 튠 원내대표가 클래리티법을 본회의 심의 안건으로 채택하기 위한 표결 종결 동의안을 제출했다고 전했다.
이번 조치는 클래리티법이 진일보했음을 보여주지만, 통과 여부가 아닌 법안 자체를 심의 대상으로 삼을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즉, 최종 표결에 부쳐지거나 상원 통과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현재 미국 연방 상원의 전체 의석은 100석이며, 이중 공화당 53석, 민주당 45석, 민주당과 함께 활동하는 무소속 2석으로 구성돼 있다. 공화당 의원수는 과반이지만, 클래리티법의 완전한 통과를 위해서는 민주당으로부터 최소 8표를 얻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클래리티법이 최종 통과가 이뤄질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참고로 상원은 이달 10일부터 내달 14일까지 휴회한다. 이 기간에 상원 의원들은 워싱턴D.C를 벗어나 지역구 활동에 집중한다. 클래리티법은 물론 주요 법안 표결도 9월 중순 업무 복귀 후 예정됐다.
‘클래리티법’(CLARITY Act)은 가상자산업계 최초로 포괄적인 연방 규정집이다. 미국에서는 증권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상품은 상품건물거래위원회(CFTC)가 감독한다. 디지털자산이 증권인지, 상품인지에 따라 규정에 따라 감독 기관이 달라지는 셈이다. 블록체인∙가상자산업계는 클래리티법이 명확한 법적 체계를 제공하는 만큼, 산업계에 가상자산 도입을 촉진하는 데 필수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그동안 민주당이 클래리티법 통과를 지속해서 반대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 일가의 암호화폐 사업 및 고위 공직자의 이해충돌 문제를 해소할 윤리 조항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이유에서다.
‘윤리조항’은 트럼프 대통령과 부통령을 비롯해 연방 정부 공직자가 재임 중 가상자산으로 얻는 이익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트럼프 일가의 가상자산 수익이 이해충돌을 야기한다고 비판하며 윤리 조항을 반드시 포함시키라고 피력했다.
사실 윤리 조항은 클래리티법 통과를 미뤄지게 만든 핵심 요인으로 언급돼 왔다. 트럼프 일가가 비트코인으로 수억 달러를 벌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일자, 윤리 조항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대선 후보 시절 암호화폐와 밈 코인 사업으로 최소 14억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지난 2월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전에 UAE 왕실 내 핵심 관계자가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WLF)의 지분 49%를 비공개로 인수한 사실이 현지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곧이어 5월에는 UAE가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 엔비디아로부터 수십만 개의 첨단 인공지능(AI) 칩 구매를 허용하기로 합의한 사실이 논란을 키웠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암호화폐 산업에 유리한 법안을 만들어 막대한 이익을 얻으려 한 점,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금융서비스 규제에서 암호화폐 서비스 제공업체를 제외하려는 점, 법무부 산하 국가암호화폐집행부(NCTE) 해체로 단속을 약화시키려는 점 등의 윤리적 문제가 법안 통과를 막는 데 주효했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윤리 조항이 포함된 클래리티법 수정 초안을 최종 승인하며 한 발짝 물러섰지만, 가상자산에 대한 불확실성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 상원 본회의에 최종 통과를 위해서는 야당인 민주당 의원의 추가 지지표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주당은 아직 수정된 법안 전문을 검토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법안 통과가 지연될 조짐이다.
한국 블록체인∙가상자산업계는 의회 표결 정족수 확보가 난항을 겪는 점, 핵심 쟁점의 합의 부재, 의회 의사 일정이 9월 중순으로 밀린 점 등을 이유로 클래리티법의 연내 통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김대성 변호사는 “민주당이 △자금세탁방지(AML) 및 디파이(DeFi) 불법금융 차단 장치 강화 △대통령 일가와 공직자의 가상자산 사업 관련 이해상충 방지 △투자자 보호 수준 강화 등을 강화게 요구하고 있어 당론 차이를 좁히기가 어렵다”며 “휴회 후 복귀하더라도 연방 정부 셧다운 방지를 위한 예산안(CR) 처리, 국정감사 및 중간선거 정국 돌입 등으로 가상자산 법안의 순위가 뒤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고 예측했다.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황석진 교수는 9월 중순 클래리티법에 대한 상원 표걸 가능성은 열려있지만, 연내 통과는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화당 의석수만으로는 최종 표결을 확정 지을 수 없는 데다 트럼프 대통령 및 공직자와 관련된 이해충돌 방지 조항에도 합의가 필요하다”며 “표결이 진행되더라도 추가 협상이나 수정안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디지털에셋 조진석 대표는 클래리티법 최종 통과 가능성이 70%라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그는 “이번 사안은 단순히 법안 처리가 유예된 게 아닌, 오히려 공화당 주도로 클래리티법이 본회의 심의를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이는 공화당이 실제로 입법을 추진할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클래리티법 통과가 전통 은행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은행권은 클래리티법 통과를 고려해 가상자산 플랫폼이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사실상 예금 이자와 비슷한 보상을 지급하는 시스템 구축에 힘써왔다.
김대성 변호사는 “(클래리티법 통과로)전통 은행권은 디지털자산수탁과 온체인 결제망 구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된다”며 “이는 기존 예금 중심 비즈니스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24/7 실시간 자금 이체 및 결제 서비스로의 확장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증권과 디지털상품의 명확한 경계로 블랙록, 골드만삭스 등 대형 자산운용사 및 투자은행(IB)의 실물자산 토큰화(RWA), 토큰증권(ST), 기관용 커스터디 사업 참여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어준경 교수는 “흥미로운 점은 은행권이 반대하는 것 자체가 법적∙경제적 파급력이 상당하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관건은 ‘기존 은행권과 가상자산업계 간 이해관계를 어디서 절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히 암호화폐 투자수단이 아닌, 예금과 지급결제를 대체할 금융 인프라로 발전한다면 은행의 수신 기반 자체가 영향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블록체인∙가상자산업계는 은행 예금을 놓고 사실상 경쟁 구도가 형성된다며 강하게 반발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금융권과 가상자산업계 간 주도권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차앤권 법률사무소 권오훈 변호사는 “스테이블코인이 예금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면 은행 예금이 디지털자산 시장으로 이동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장기적으로 지급결제와 수신 기능에서 은행과 디지털자산 사업자 간 경쟁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미국 은행권이 클래리티법의 스테이블코인 이자∙보상 규정을 중요한 쟁점으로 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전하며 “결국 전통 은행권 입장에서는 클래리티법이 단순히 가상자산업계를 규율하는 법이라기보다, 디지털자산을 제도권 금융 안으로 본격적으로 편입시키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