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자산 기업공개(IPO)가 거래소 편중에서 벗어나 커스터디(수탁),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결제 플랫폼 등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불리시(Bullish)와 서클(Circle)의 연속 상장 이후 그레이스케일(Grayscale), 코인셰어스(CoinShares), 비트고(BitGo) 등도 상장을 준비하면서 미국 증시는 사실상 가상자상 자본 집적지로 자리를 잡고 있다. 동시에 빅테크 다음 테마로 가상자산 섹터가 부상하는 모습이다.
1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달 미국 증시에는 가상자산 거래소 제미니(Gemini)와 블록체인 대출 플랫폼 피겨(Figure)가 상장했다. 제미니와 피겨는 상장 첫날 각각 공모가 대비 14.3%, 24% 오른 가격에 거래를 마치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이보다 앞서 6월에는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서클이, 8월에는 기관특화 가상자산 거래소 불리시가 뉴욕 증시에 입성했다.
이번 상장 러시 특징은 가상자산 밸류체인의 전방위 확장이다. 과거 거래소 위주였던 상장군이 운용과 커스터디, 스테이블코인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가상자산 운용사 그레이스케일과 유럽 최대 가상자산 투자사인 코인셰어스, 가상자산 수탁사 비트고 등이 상장을 예고하고 나서면서 증시 내 밸류체인 확장은 한층 속도를 낼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단순히 가상자산 가격 변동성에 의존하던 산업구조에서 벗어나 전통 금융업과 유사한 핵심성과지표(KPI)로 평가받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코인 가격 사이클에 따라 실적이 좌우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운용자산(AUM)이나 수탁자산(AUC), 결제량 등과 같은 펀더멘털 지표가 기업가치를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며 "실질적 성과를 입증한 기업들이 IPO를 통해 글로벌 투자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 정치적 환경과 기관자금 유입이 맞물리면서 가상자산 기업 IPO는 더욱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심사 및 감독 강화라는 변수가 여전하지만, 기업들은 정책 불확실성보다 상장 프리미엄이 더 크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SEC는 올해 심사 우선순위 목록에 가상자산을 포함하며 감독 강화를 예고한 바 있다.
다만 뉴욕 증시의 가상자산 허브화가 고착되면서 그 외 사업자, 특히 국내 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쏠리면 다른 국가의 가상자산·블록체인 산업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관련 제도화가 미진한 사이 기업들의 상장 기회뿐 아니라 자금 유동성, 투자자 수급 등 연쇄적인 기회비용을 상실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체계적인 제도와 인프라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유망 기업들이 상장지를 미국 등 해외로 옮기게 되고, 국내 시장은 리레이팅(가치 재평가)이나 섹터 프리미엄과 같은 2차, 3차 파급효과를 놓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