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자산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디지털 자산 시장이 특정금융정보법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으로만 규율되고 있어 제도적 공백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제도화가 미비한 탓에 디지털 자산 산업이 ‘반쪽짜리 규제’ 속에 방치돼 있으며, 자칫 시장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12일 문철우 더불어민주당 경제성장위원회 금융혁신분과위원장과 신상훈 김앤장 법률사무소 전문위원은 "디지털 자산 거래지원 절차 및 기준 마련, 투자정보 제공을 위한 공시체계 확립, 영업행위 규제, 발행과 유통량 관련 규율체계 정립 등 다양한 입법과제가 산적해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기존 전통 금융시장과 작동 매커니즘이 차별화돼 있고, 규제 역사가 얼마 되지 않은 디지털 자산 시장의 경우, 관련 입법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고 시장과 규제 전문가들의 논의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이러한 절차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 지 의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디지털 자산 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현재 특금법 체계를 '반쪽짜리'라고 비판하며 "법은 존재하지만, 시행령이나 감독 규정이 불명확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라며 "대표적으로 '1거래소 1은행' 같은 그림자 규제가 업계에 부담이 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김상래 경희대학교 교수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디지털 자산이 아닌 전통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금융중개 기관으로 명확히 제도화해야 한다"라며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와 발맞춰 관련 법령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규제 흐름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효봉 태평양 변호사는 동일한 상품을 판매하는 해외 복수 거래소와 경쟁하는 디지털 자산 시장의 특성 상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하면 국내 발행·유통 수요가 모두 해외로 향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글로벌 규제 수준과 규제 차익이 최소화되도록 규제 마련이 필요하다"라며 "해외 발행인을 통제할 방안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내 시장의 힘을 키워 해외 발행인이 국내 규제를 자발적으로 준수하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복진솔 포필러스 리드는 "적절한 규제 프레임워크 구축을 위해서는 정책입안자들이 블록체인에 관해 높은 이해도를 가져야 한다"라며 "블록체인의 본질에 대한 이해, 다양한 블록체인 서비스 경험, 글로벌 블록체인 산업 동향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그는 "미국에선 폴 앳킨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고위 공무원은 물론, 디지털 자산에 부정적이었던 게리 겐슬러 전 SEC 의장까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해 굉장히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라며 한국 정책 입안자들의 전문성 제고 필요성을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제도화 안착과 더불어 디지털 자산 산업 육성 전략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신속히 업권법을 제정하고, 정부가 '디지털 자산 산업을 전면 육성·진흥한다'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 시장과 기술, 그리고 산업의 작동 원리에 대한 깊이 있는 경험과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이 산업 육성·진흥, 규제 개선, 업권법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문철우 위원장과 신상훈 전문위원은 "국가 차원의 '산업육성'이나 '글로벌 정책 대응'을 위한 전략은 부재한 상황"이라며 "한국은 고도화된 정보기술(IT) 및 금융 인프라와 풍부한 우수인력, 그리고 디지털 자산에 대한 높은 관심이 있다. 새 정부에서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 전환 및 시장의 건전한 육성을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면 글로벌 디지털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라고 내다봤다.
구체적인 산업 육성 전략도 등장했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는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펀드형 상품은 투자자 보호와 시장 건전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라며 'K-비트코인 ETF' 출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현물 ETF 도입 전 선물 ETF를 도입함으로써 완충 장치를 확보할 수 있다"고도 했다. 정구태 대표는 "이 과정에서 ‘한국형 블랙록’과 같은 디지털 자산 전문 운용기관 육성이 기반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블랙록, 피델리티 등 글로벌 운용사들은 디지털 자산을 전담 조직으로 관리하며 전략적 상품을 운용 중인 만큼, 한국 역시 전문 운용사 육성을 통해 자산 운용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위해 발행자격, 정보공개, 외환규제 상의 관리 방법에 관한 세부적인 법안 정비를 신속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라며 "디지털 자산 기반 ETF도 허용해 디지털 자산 투자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고 금융회사들의 관련 기술 역량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라고 피력했다. 김효봉 변호사는 해외 자본 유치와 국내 사업자의 해외 진출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제안하며 "한국이라는 시장과 한국의 디지털 자산 사업자들이 전체로서 글로벌 시장에서 힘을 가져야 한다. 그 전제가 되는 것이 해외 사업자의 국내 진출 및 국내 사업자의 해외 진출을 통한 경쟁력 강화라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했다. 익명의 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현재 실명 계좌로 인한 외국인 거래 불가 상황을 개선하여 글로벌 연결성을 확보해야 하며, 기존 금융 프레임워크로의 완전한 편입보다는 웹3 고유의 문화와 생태계를 보전하면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