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을 계기로 미국 가상자산 시장에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참여 방식이 등장했다. ‘트럼프 코인’이라 불리는 정치 테마 밈 코인이다. 단순한 유행이나 장난을 넘어 극우 정치권이 온라인 팬덤과 자본을 끌어모으기 위해 사용하는 새로운 정치 전략으로 꼽힌다. 이른바 ‘폴리티파이(PolitiFi)’다.
폴리티파이란 정치(Politics)와 탈중앙화자산(Defi)의 합성어로 정치 색을 띄는 가상자산을 말한다. 인터넷 상의 밈(meme)역할을 수행하며 정치 담론을 형성하고 바이럴과 마케팅 도구로 사용된다.
폴리티파이는 캠페인 메시지를 빠르게 전파시키고 정치인에 대한 시뢰가 곧 관련 토큰에 대한 신뢰로 여겨지기 때문에 스토리텔링과 개인적인 선호만으로도 투기를 부추긴다. 줄리안 프롤스(Juliane Proelss) 콩코르디아 대학 교수는 “폴리티파이는 정치 소외계층이나 저소득층 사이에서 정치 캠페인 영향을 넓히고 있다”며 “관련 정보가 부족한 투자자나 유권자에게 영향을 줘 시장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2024년 미국 대통령 대선 공개토론 직전 트럼프 관련 밈코인의 가격이 급등한 바 있다. MAGA, MAGA hat 등 트럼프의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슬로건 관련 밈코인의 시가총액이 6월 7억 7500만 달러까지 뛰어올랐다. 이를 두고 포레스트 프리지비시(Forrest Przybysz) 시스티나 리서치 CEO는 “밈 코인은 투기성이 높고 관련 인물이 주목을 많이 받을수록 가격이 상승한다”며 “트럼프는 밈 토큰의 이상적인 주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트럼프가 직접 공식 밈코인 출시 소식을 홍보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가문 산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을 통해 ‘$TRUMP’ 출시를 발표하자 해당 코인은 20달러에서 700달러 이상으로 가격이 3배 이상 상승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만인 취임식 당일 급락했다. 정치 이벤트 연동형 자산이라는 특성 때문에 정책 발표나 언론 노출만으로도 가격 변동 폭이 커지는 구조가 고착됐다.
트럼프 밈코인은 경제적 불평등과 대규모 투자자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 블록체인 분석 회사 체인널리시스에 따르면 $TRUMP를 구매한 약 76만 4000개의 지갑이 투자 손실을 입고 58개 지갑은 1000만 달러(약 145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얻은 것으로 나타나 투자자별 수익률이 불균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재 총 공급량의 80%는 CIC 디지털 등 트럼프 가문 자회사들이 보유하고 있으며 3억 2400만 달러(약 4712억 원) 이상의 거래 수수료가 코인 발행 프로젝트 관계자의 지갑으로 송금된 것으로 밝혀졌다. 투자자 손실이 누적되는 동안, 정작 자산을 발행하거나 초기 보유한 주체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업계 내부에서도 정치 밈코인이 시장의 건전성을 훼손한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 이더리움 공동 창립자는 “정치 밈 코인은 정치인이 직접 거래 없이도 토큰을 통해 이득을 취하게 하는 일종의 뇌물”이라고 지적하며 “비밀 자금 지원에도 사용될 수 있고 민주적 청렴성을 훼손하고 정치적 지지와 금융 투기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치 세력이 밈코인을 통해 우회적 후원 구조를 만들고, 그 부작용이 시장 전반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글로벌 코인시황 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24일 기준) 급락 및 급등 종목 모두 상위권에 트럼프 관련 밈 코인이 포함된다. MAGA TRUMP(TRL)는 전일대비 94.59% 하락한 수준으로 급락 코인 3위에 올랐으며 급등 코인 TRUMP MAGA(MAGA)는 579% 상승해 급등 코인 2위를 기록했다. 실체 없는 테마 코인이 유동성을 흡수하고 급등과 급락 등 변동성을 키우며 장기적 산업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
정치와 자산이 결합한 ‘폴리티파이’ 모델과 트럼프 밈코인은 분명 새로운 문화로 고평가 받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소수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구조, 투자자 손실이 방치되는 시장, 정치적 극단성이 확대되는 등의 위험이 공존하고 있다.
